심상

작곡

PaxCaelo 2023. 9. 30. 20:42

https://youtu.be/rbSAIwBGCPA?t=1541 

 

고1 때 작곡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두 번째로 만든 노래. 이 곡으로 친구가 기독교 창작곡 대회 본선에 진출했다. 정식으로 발매된 음반에도 실렸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가사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면서 곡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당시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기타만 친다고 아버지한테 혼나던 터라 틈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걸리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새벽에 일어나 소리가 나지 않게 이불 뒤집어쓰고 조용히 기타를 치며 악보를 그렸다. 곡은 거의 하루 만에 완성했다. 나중에 듀엣으로 부를 수 있게  편곡하고 반주자를 위해서 피아노 악보도 만들었다. 녹음에 참여하는 밴드에게 연주 방법을 요청하는 글도 작성해서 전달했다. 대회에선 수상은 못했지만 후에 심사위원들이 내 곡이 좋다는 칭찬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뒤로 친구들 요청으로 이런 저런 곡을 많이 만들었다. 곡을 쓰면서 화성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게 재미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코딩하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쾌감이 있다. 소리가 정상파 속에 배수로 떨어지는 배음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쌓였을 때 여러 가지 느낌의 화음이 만들어진다는 원리를 알고 나서는 더욱 빠져들었던 것 같다. 화성의 흐름은 긴장과 해결의 연속이다. 전통적인 4 성부 화성학은 거의 기계적으로 가져다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긴장을 만들고 이를 해결하는 원칙이 분명했다. 근데 그걸 깨서 긴장을 해소하지 않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텐션을 주는 재즈 화성도 좋았다. 나중에 대회를 주관하는 팀에서 초빙한 전문가가 후렴부를 앞에 넣으라는 의견을 주셔서 달라지긴 했지만 원곡은 4도로 시작하는 나름 흔치 않은 방식으로 만들었다. 전주에서 G-F-Eb로 떨어지는 것도 내가 흥미롭게 연습해보고 있던 약간은 몽환적인 코드 진행이었고. 

80년대 후반이었으니 악보 그리는 프로그램 따윈 없었다. 그래서 항상 손으로 악보를 그렸다. 오선지가 없으면 줄도 그어가면서. 곡을 처음 쓸 때는 계속 고쳐야하니 연필로 그렸지만 완성된 후에는 펜으로 깔끔한 악보를 만들어야 했다. 틀리면 고치는 방법도 여러 가지 연구해서 사용했다. 초반엔 화이트를 주로 썼지만 그보다는 다른 종이를 잘라서 위에 붙여 넣고 다시 그리는 게 효과적이었다.

처음 시작은 중3때 음악 선생님의 권유였다. 음악 시간에 시킨 시창, 청음을 완벽하게 했다는 이유였는지, 어느 날 부르시더니 나에게 작곡을 전공하라고 권유하면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게 기초화성학 책을 소개해주었다. 그래서 중3 겨울에 4 성부 화음을 다루는 화성학 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재밌었는지 정말 푹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재즈화성이나 경음악 편곡 따위를 공부하면서 슬슬 곡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게임 프로그램을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즐기는 모습이 좋았던 것처럼 내가 만든 곡을 주변 사람들이 부르는 게 좋았다. 그렇게 즐겁게 작곡을 하던 게 시들해진 건 군악대 시절이다. 선임들의 강압적인 명령으로 군악대에서 사용할 악보를 수시로 그리고, 행사 지원 나갈 때마다 요청받은 곡을 브라스 밴드용으로 편곡하고 그러는 게 일상이 되니 오히려 재미가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만든 곡은 주임 원사의 요청으로 만든 사단 하사관 단가. 그리고 손을 놓은 지 30년이 지났다.

일을 하면서 유튜브에 올라온 연주곡을 많이 듣는 편이다. 그러다 오늘 본 한 음악 영상에는, 모든 곡을 자기가 다 만들고 편곡한 거라는 설명이 달려있었다. 유명한 사람은 아닌 듯하고 아마도 취미로 곡을 쓰고 피아노 연주를 하는 분 같다. 곡이 너무 편안하고 부드럽고 상냥해서 그런가, 그냥 배경 소음 정도로 켜놓았는데 음악에 끌려 자꾸 집중하게 됐다. 그러면서 갑자기, 나도 다시 곡을 만들고 연주를 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도 찍고 연주한 곡을 넣어서 가볍게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볼까, 뭐 그런 생각.

 

어릴 때는 뭐가 됐든 내가 만든 것을 선물하기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선물이 필요하면 남들이 만든 것 중에서 고른다. 그나마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끔 빵을 구워서 선물하기는 하지만.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곡을 만들어서 선물할 수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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